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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 : 원나라(1271~1388)삼별초(70~73)

1274년,1281년 2번의 태풍이 일본을 구하다 (몽고의 일본 침략)

by 프리매쓰 2020. 7. 1.

고려말, 1231년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를 고려가 살해한 것이 구실이었다.

1170년 이후 61년간 지속되던 무신 정권이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30년 가까이 6번이나 조선을 침략했다.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며 끝까지 항쟁했으나 고려는 1259년 항복하고 몽골과 굴욕의 강화 조약을 맺었다. 사실상 1259년부터는 고려가 아니고, 몽골 식민시대의 시작이었다. 1364년 고려군이 반원정책의 공민왕을 폐위시키려고 쳐들어 왔을 때 물리침으로 사실상 거의 100년간의 몽골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났다.

이 몽골의 식민지 시대 초기인 1274년과 1281년 몽골은 일본은 2차례 침략한다. 말이 여몽 연합군이지, 사실은 몽골제국군이다. 우리는 식민지 지배를 받던 민족이었으니까. 일제 시대에 2차 세계 대전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끌려갔듯이...

힘없는 민족의 설움..

“태풍이 일본을 구하다.” 1274년 5월 14일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마산에서 출정했다. 총병력이 40,000명에 이르는 대부대였다. 여·몽 연합군은 월등한 전력으로 대마도를 점령한 후 규슈(九州)로 향했다. 규슈로 향한 연합군은 일본의 강력한 저항으로 배로 철수한다. 바로 그날 밤 태풍을 만난 정벌군의 반이 죽었고, 200여척의 전함들이 바위와 언덕에 부딪쳐 부서지고 침몰되었다. 7년 후 몽고는 다시 일본을 침공한다.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 4만 명에 병선 9백 척으로 전면에 배치시키고, 강남군은 10만 명과 병선 3천5백 척으로 후위에서 돕게 했다. 일본군은 총력을 집결하여, 7주 동안 규슈의 해안선을 단호히 지키는데 성공한다. 결국 배에서 내리지 못한 채 8월 15일 태풍이 북상하면서 강남군은 거의 다 익사하고 큰 타격을 입은 여몽연합군도 결국은 퇴각하게 된다. 태풍이 전 세계를 정복한 몽골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일본의 침공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태풍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시기

1차 원정

1274년10월 5일 ~ 10월 20일

2차 원정

1281년5월 21일 ~ 윤 7월 7일

장소

일본 대마도, 이키 섬, 규슈 본토

원인

쿠빌라이 칸의 일본 정복 야욕.

 

여몽연합군의 1차 원정로

 

여몽연합군의 2차 원정로

 

1차 원정에서 몽골군은 2만 5천, 고려군은 1만 5천이었고, 2차 원정에서 강남군은 10만 명, 나머지 4만의 동로군은 몽골군 1만, 고려군 1만, 고려의 수부 1만 7천이 동원되었다. 한편 1차 원정에서 900척의 전선을 만드는데 4개월 동안 고려인 3만 5천 명이 동원되었다. 사실 이는 고려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달가운 전쟁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몽골과의 대규모 전쟁으로 전 국토가 피폐해져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어야 했기 때문. 농경지나 도시의 복구에 쓰여야 했을 인적, 물적 자원을 전쟁용으로 돌리게 되면서 고려 말기는 더욱 더 피폐해지게 된다.

여담으로, 이 전쟁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 태풍은 후에 카미카제라는 말이 생긴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1592년, 1910년 2번이나 일본의 큰 침략을 당하고 선조들이 죽음을 당하고 역사적으로 많은 일본 해적들의 괴롭힌 우리나라로써는 일본의 강인함에 번번히 아픈 역사로 남아 있다.

태풍의 힘이었던 아니었던 일본은 13세기에도 당시 세계 최강국 몽골제국의 침략을 번번히 막아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몽골제국은 사실상 서유럽 일부와 중동 일부를 제외한 문명지역의 세계 대부분을 정복하고 당시 세계 최강국으로 지금의 미국보다 더 위세가 강한 나라였다. 마음만 먹었다면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도 할 수 있었던... 그런데, 작은 섬나라 일본을 먹지 못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도 그랬고, 중일전쟁, 2차 세계 대전도 그랬지만, 일본은 역사적으로 무서운 강소국이었다.

중국도 버거운데, 그런 일본까지 옆에 둔 우리 민족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항상 한반도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최소한 일본도 화려한 천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처럼 매번 침략당한 역사가 아닌, 대부분 침략을 막아내거나 남을 침략한 역사로...!

그리고 우리는 임진왜란(1592) 이전에는 대마도가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는 고려말과 조선초 2번이나 우리에게 정벌당한 사실상 임진왜란 전에는 경상도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13세기 후반에도 대마도는 왜와 함께 몽골제국에 맞서는 사실상 일본의 영토인 것 같다.

만약에 가미가제가 없어서 몽골제국이 일본제국을 모두 정벌하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본의 화려한 천년 문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다 망가졌을까?

하여간 2차례 여몽연합군에 의해 대마도의 군인은 절멸하고 기존 대마도인도 거의 죽고 섬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이때부터 대마도가 왜구들의 전초기지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로 인해 조선 해안가와 멀리 중국 해안가까지 왜구들의 공격대상이 되었고, 임진왜란 뿐 아니라 청나라다의 공도정책까지 이르게 된다.

한때 정화의 원정(1433)으로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자랑하던 중국도 왜구때문에 해양 영향력을 포기하고 중국 대륙으로 세력이 닫힘으로 15세기 이후 화려한 자연과학 발전의 유럽에게 세계 최강국 위상을 넘겨주게 된다.

결국 15세기까지 세계 최강국이었던 중국이 유럽에게 패권으로 넘겨준 대에는 일본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이 일본을 좋아하나 보다.

지금도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는 태평양 등 바다를 미국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며, 중국도 남중국해를 통해 해상으로 다시 세력을 넓히려 하지만,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의 견제로 쉽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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