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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 당나라(619~907)안시성전투(645)

당나라 (618~907)

by 프리매쓰 2020. 7. 17.

수나라와 오대 십국 시대 사이에 존재한 중국의 한 왕조이다.

중국 문화의 전성기

수도는 현재의 시안인 장안이다.

이연은 수나라 말기에 권력을 잡아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건국했다. 7세기와 8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정부에 등록된 인구 수는 약 5,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후 중앙 정부가 붕괴되어 인구 수를 제대로 조사하기 어려웠던 9세기에도 인구 수는 8,000만 명 정도로 증가했다고 추산된다.

당나라는 발해, 신라, 베트남,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나라는 오랫동안 안정된 정치를 유지했으나, 안사의 난 이후 중앙집권체계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수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당나라는 사대부들을 통해 백성들을 다스렸으며, 이들 사대부들은 과거제나 관리들의 추천을 통해 관직에 등용되었다.

9세기에 절도사로 알려진 지역 군 통치자들이 성장하면서 이러한 통치 체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 도자기 문화가 이 시기에 유명해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인 이백과 두보가 당나라 시대에 살았으며, 유명한 화가들인 한간, 장훤, 주방도 당나라 사람이다.

이 시기의 학자들은 다양한 역사책을 출간했으며, 지리서와 백과사전도 많이 출판되었다.

목판 인쇄의 발달과 같은 수많은 기술적 혁신도 당나라 시대 때 일어났다. 당나라 시대에 불교가 중국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산되었고, 중국 고유의 불교 종파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당 무종이 폐불을 선언하면서 불교의 영향력은 쇠퇴했다. 9세기에는 왕조와 중앙 정부가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예술과 문화는 계속 융성했다.

또한 9세기에도 여전히 당나라의 상업 활동과 무역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9세기 후반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관료제 전체가 타격을 입었고, 이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위구르가 당나라의 요청을 받고 안사의 난을 막기 위해 당나라 수도인 장안을 쳐들어가 장안은 불태워지고 많은 당나라 후궁들이 약탈당했다.

안사의 난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했던 당나라는 황소의 난 (874–884) 당시 장안과 낙양이 모두 약탈당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당나라는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데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황소를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 군벌들이 성장했다.

이후 군벌 중 한 명이었던 주전충이 당 애제를 축출하고 907년 스스로 황제가 되어 후량을 건국함으로써 당나라는 멸망했다.

 

아래는 700년경 당나라 지도.

당나라를 우리 역사 입장에서 보면, 고구려를 멸망시켜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 범위를 한반도로 좁히게 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나라이다. 
지금 중국은 과거 중국오랑캐를 모두 자기내 나라라고 우기고 있다. 티벳, 위그르족, 만주족, 내몽고족 등등.
홍콩, 대만 문제가 정리되면...
그 다음은 내몽고, 한국, 베트남을 자기내 나라라고 우길지도 모른다.
한계는 있지만, 힘을 키워야 한다.

 

아래는 현재 지도. 중국과 주변국.

 

중국인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동북공정으로 만주를 중국 역사로, 서북 공정으로 위그루와 티벳도 중국 역사로 만들었 듯, 오랜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조선과 베트남도 먼 미래에 중국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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