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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 청일전쟁(4~5)동학(94)갑오개혁(94)

1894년 을미사변,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by 프리매쓰 2021. 6. 26.

1882년 임오군란 때는 흥선대원군이 반란 세력을 등에 업고 궁중에 들어와 대권을 장악했다가 곧 청군에 의해 납치되었다. 우리나라 왕의 아버지를 이웃 나라가 잡아간 엄청난 사건이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궁중을 습격한 개화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청나라군에 의해 밀려남으로써 왕권은 크게 실추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와 일본이 이 변란을 계기로 조선에 진주해 세력 다툼을 벌여 조선의 자주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다.

민씨 정권에서 청나라 군을 끌어들여 개화파를 진압하자, 일본은 일본대로 청나라가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조선에 병력을 대대적으로 파견하였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민씨 정권과 고종은 친청 정책을 펼치면서 새로운 국면을 모색했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동북아시아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혼란은 점차 가중화되었고 전국 곳곳에서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급기야 그것은 1894년 3월 동학혁명으로 폭발되어 관군과 농민 사이의 전면전으로 발전하였다.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조선 조정은 위기감을 느끼고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를 발판으로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우리나라에 오게 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일본군은 1894년 6월 우리나라 황실인 경복궁을 마음대로 침입해 당시 우리나라 왕비를 시해하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고, 한달 후 조선에서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청일전쟁을 시작하였다. 

 

청일전쟁은 그 이듬해인 1895년 4월까지 1년간 우리나라에서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백성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 청일전쟁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2차 동학혁명이 일어났으나, 동학 혁명에 참가한 모든 조선인들은 일본군의 총에 의하여 대부분 사살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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